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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7. 첫째의 추억

by healthyrenn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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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시술을 한 뒤 약 보름 후 혈액 검사를 했고 그날 전화로 호르몬 수치가 높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마도 착상에 성공한 것 같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착상은 수정란이 자궁에 잘 달라붙어서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약간 순진했는지 그 전화의 내용이 "임신입니다"라고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순수하게 '아 이대로 잘 진행되면 임신이 되겠구나' 생각하고 평소처럼 생활했던 것 같다.


그러다 상황을 인지했던 것은 4~5주 차쯤이었을 것 같다. 병원에서 초음파 검진을 받으며 문제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는 아내가 물었다.

  • 아내: "그럼 언제쯤 임신으로 판정 나는 것인가요?"
  • 의사: ".................................? 네? 이미 임신인데요?"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우리 부부는 약간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기뻐해야 하나? 기뻐하는 게 맞겠지? 뭔가 멍- 한 우리의 표정을 보고 오히려 의사가 당황하는 듯했다. 물론 우리 부부는 속으로 아주 기뻐했다.

그나저나 주변에는 알려야하나 고민했는데, 확실해지기 전까진 주변에 알리지 말자고 하며 우리 부부는 다시 평소의 생활로 돌아갔다.


아마 6주차 쯤이었을까.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며 아이 심장이 뛰는 것을 보라고 했다. 분명 조그마한 점 같은 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의사는 심장 소리를 들려주겠다며 뭔가를 하니 정말 쿵쾅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심장이 뛰는 모양으로 심장 소리를 재현한 것이라 추측되지만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즘 초음파는 이런 것도 되는구나.

그나저나 저 조그만 올챙이 같은 게 정말 우리들의 아이일까?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생소한 감정이 약간 느껴졌다. 아마도 아이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태아를 위한 태명을 고민했었다. 한 주 가량 고민하다 결국 하나를 골라서 붙였다. 초여름 풀과 나무가 초록색으로 푸르던 시기에 맞는 예쁜 이름이었다.


7주 차에 이르러서 심장이 뛰는 모습을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심장이 많이 커졌고 태아도 잘 자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부부는 이제 확실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임신 바우처를 신청하고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알렸다. 물론 회사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알렸다.

주변에서 많은 축복을 받았다. 솔직히 기뻤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축복을 받는 상황이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니까.


한 번에 모든 것이 잘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그다지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8주 차에 이르러서 초음파 검진 과정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아이의 심장이 이전보다 약하게 뛰네요. 안 된 말씀이지만 거짓말은 할 수 없지요.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니 절대 자책하진 마시고요..."

아직 태아가 죽은 것은 아니지만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고 가망이 없다는 판정이었다.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는다는 느낌이 바로 이거였구나 하고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잠깐 동안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잠깐의 침묵 뒤 방금 들은 것이 착각이었기를 빌었다. 그리고 내심 침착하게 "그럼 유산인가요?"라고 내가 물은 것 같았다. 그리고 '계류유산'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태아가 사망하거나 위독한 상태로 자궁 속에 있는 상태라는 말이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잠깐 다른 병원에 찾아가서 한번 검사를 받아볼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담당의를 믿지 못하였다. 당연히 거짓말이라 믿고 싶었다.

그동안 아이에게 너무 많은 애정을 쏟아부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글라스를 끼고 몰래몰래 울었다. 물론 아내에게 금방 들켰다. 공교롭게도 이날 바우처 카드가 발급되었다기에 진정하고 있던 아내가 이걸 찾으러 간 사이에 나는 울먹이며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집에 와서는 둘이서 껴안고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평소 울보였던 아내가 집에 오기 전까진 침착했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닥치고 나니 그 서러움은 정말 생애 최악이었던 것 같다.


정상적이었다면 8주 차가 되었을 시점에 우리는 수술 일정을 잡았다. 시작 전에 간단하게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고 의사의 판단대로 아이는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였다. 그렇게 첫째는 짧은 생을 마치고 하늘나라에 갔다.

순간적으로 의사를 믿지 못했던 때가 살짝 부끄럽기도 했다. 이런 일에 일부러 거짓말을 할 의사가 어디 있을까.

소파술, 소파수술이라 불리는 이 수술은 쉽게 말해서 자궁 안에 있는 것을 긁어내는 수술이라고 한다. 자연적으로 태반과 함께 피에 섞여서 흘러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남아있게 되면 좋을 게 없기에 이를 강제로 긁어내는 것이다.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이기에 미안할 필요는 없겠지만 애정을 쏟던 상대가 그렇게 되고 나니 역시 헤어지는 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수술이 끝나고 강하게 수면마취가 되어서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아내를 옆에서 지켜본다. 그래도 잘 견뎌줘서 고마웠다. 수술은 수술이니 만큼 한동안은 안정이다. 이 상황에서 뭐 다른 게 할 게 없겠지. 한동안은 푹 쉬자.

 

8. 둘째와의 짧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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