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성공적으로(?) 임신한 이후 달라진 점은 입덧 말고 뭐가 있을까.
대략 22~23주 차 근처에서 아내의 입덧은 사라졌다. 하지만 내가 떠맡았던 요리와 설거지는 여전히 내 담당이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해주고 싶어서였다.
임산부의 배에서 아이가 차지하는 공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먹는 양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를 먹여 키워야 하니 잘 먹어야 하는데 이런 모순스러운 디자인이라니 조물주(?)를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분명 이건 걱정스러워해야 할 부분이다. 병원에서도 항상 임산부의 체중과 태아의 크기를 살펴보는 것이 이유는 있을 것이다.
아내는 끝(?)까지 잘 먹지는 못했지만 다행히도 몸무게는 조금씩 늘어갔고 아이도 잘 크고 있었다. 단지 아내가 많이 못 먹어서 짜증을 낼 뿐이다. 그리고 자꾸 밥을 나에게 덜어줘서 내가 살이 피둥피둥 찌게 되었다는 큰 부작용도 있었다.
아내의 배가 제법 나오긴 했지만 복부 비만으로도 오해를 살 수 있는 수준이었던 때도 있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임산부 배지다. 이 배지를 가방의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차고... 이런 귀찮아서 가방을 안 들고 나왔네. 뭐 어쩔 수 있나. 하여간 배가 많이 나오기 이전에는 그다지 임산부석의 혜택을 보진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적당히(?) 나온 배가 있으니 배지가 있던 없던 거리낌 없이 지하철의 임산부석에 앉을 수 있었다. 유독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아줌마들이 비켜주는 경우는 못 봤다는 건 뭐랄까... 현실적이었네. 하지만 이 정도(?)면 굳이 임산부석이 아니더라도 아내는 웬만하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실한 임산부에겐 자리를 자의로 양보해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는데, 임신으로 배가 부르면 여러 피부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복부의 피부가 트는 현상은 여성에겐 상당히 신경쓰이는 문제 같았다. 물론 아내가 배꼽티나 비키니를 입을 일은 없어서 왜 그런 것에 신경 쓰는지는 약간 의아하긴 했지만 뭐 본인이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봐 언급하는데, 내가 못 입게 했다는 게 절대로 아니다. 난 오히려 입어보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하여간 아내의 배가 점점 불러오자 아내는 피부 트러블을 막기 위한 로션을 구입했다. 그런데 이걸 바르는 것은 바로 남편의 몫이다. 아내는 배에 로션을 손수 바를 수 없다. 윗부분은 바른다 쳐도 손이 잘 닿지도 않는 데다가 눈으로 볼 수조차 없어서 배 아래쪽을 스스로 바르긴 물리적으로 무리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줘야 한다. 결과를 이야기하자면 나름 빨리 예방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결국 배 아래쪽은 조금 텄다.
배에 로션을 바르는 행위 자체가 뱃속의 아이와 아빠가 교감할 수 있는 찬스라는데 정말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쓰다듬다보면 단단하던 배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배가 트는 것만큼 또다른 문제도 있었다. 아내의 다리가 계속 붓는다. 특히 종아리와 발 위주로 붓는다.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오래 앉아있거나 서있으면 그날 밤에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거기다 임산부는 배 때문에 발 마사지를 혼자서 할 수 없다. 이번에도 남편이 도와줄 수밖에 없다. 하루에 30분가량을 다리 마사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이 생겼다. 이 기회를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기회로 잘 삼아보자. 아내는 왠지 하루 중 배에 로션을 바르고 다리에 마사지를 받는 시간을 가장 기다리는 것 같았다.
참고로 병원에서 의료용 압박 스타킹을 구입할 수 있다. 근데 생각보다 탄력이 굉장히 강했다. 신기 조차 힘들 정도였다. 아내는 몇 번 신어보곤 더 이상 신지 않았다. 거기다 배가 많이 불러오면 혼자서 신기 조차 힘들다.
임산부는 다리 마사지를 직접 할 수 없는 만큼 발톱을 자르는 것도 굉장히 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것 만큼은 내가 도와줄 수 없었다. 왜인지 내가 남의 손발톱을 자르는 것은 상당히 예민하고 힘든 일이었다. 이것조차 못 하는데 시험관 시술 준비할 때 배에 주사 놓는 건 당연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겠지.
아내는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잘 느꼈다. 이거 봐바 하면서 내가 쳐다보면... 난 아무것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손을 조심스럽게 배에 가져다 대며 자 느껴봐 하는데, 솔직히 초반에는 이게 배 근육이 움직이는 건지 내장이 움직이는 건지 아이가 움직이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배가 어느 정도 불러오면 정말 뱃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복부나 내장 근육이 이렇게 움직일 리가 없을 것 같은 형태로 움직이고 있으니 그럼 아이의 움직임이라고 봐야겠지? 이 정도가 되면 아이의 아빠도 드디어 이것이 생명이구나 하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배가 더 심하게 불러오면 그 움직임이 눈으로 보일 정도다. 꿀렁꿀렁이라는 표현이 여기에서 딱 맞는 표현일 줄은 몰랐다. 정말 꿀렁꿀렁거린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더욱 꿀렁거렸다.
그리고 아내는 종종 고통을 호소했다. 아이가 발로 엄마 갈비뼈를 걷어 차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지. 말로만 위로를 해주는 수밖에. 그리고 이 시기에는 배에서 손이나 발이 튀어나올 것 같은 격렬한 움직임을 볼 때도 있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40주차가 찾아왔다. 왜 클라이맥스냐 하면 40주 차가 출산 예정일이기 때문이다. 임신 기간을 10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정확히는 40주라는 것을 알아두자.
예정일이 다가오니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사실 예정일 1~2주 전부터는 언제 아이가 나와도 이상하기 않은 기간이니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아내가 약간의 통증만 느껴도 설마 진통인가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고깃집에 못 간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숯불갈비집에 아거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었다. 그리고 예정일을 조용히 기다렸다.
예정일에는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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