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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12. 프롤로그의 마지막, 출산

by healthyrenn 202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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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40주 차가 되던 날, 아내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그 진통은 당연히 겪어보지 못했다. 임신 때 늘 그래 왔듯이 배가 조금씩 당기는 느낌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아프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아이가 걷어찬 갈비뼈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을 종종 들어줬을 뿐이다.

그런데 예정일을 이틀 넘긴 새벽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화장실을 달려갔다가 나오면서 뭔가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패드에 묻은 것을 보니 연두색에 가까운 노란색 액체였다.

일단은 침착하게 뭔가의 분비물이 나오는 것은 아닐지 살펴보자고 했다. 임신 도중 나오는 분비물일 수도 있기 때문에다. 하지만 그러기엔 좀 묽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다만 양수가 터진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양수는 투명한 색이고 별 다른 이물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하지만 거기엔 뭔가 건더기(?) 같은 것이 많이 보였다. 그렇다면 이건 소변도 아니고 양수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일까? 섣부른 생각만 앞섰다.

하지만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비슷한 증상으로 수 차례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소변이 마려운 증상은 전혀 없었고, 평소에 느꼈던 분비물이 세어 나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고 양도 많았다고 한다. 그것도 갈 때마다 왈칵 쏟아진다고 한다.

심상치 않음에 병원에 연락해보니 당장 짐을 싸서 입원 준비를 하라고 한다. 아내는 어디서 정보를 접했는지 40주 차가 되기 전에 미리 짐을 챙겨놓고 있었고 덕분에 순식간에 짐을 챙겨서 바로 나올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언급하는데, 짐이 많다고 가방을 여러 개 준비해서 넣지 말고 가급적 큰 캐리어 하나에 구겨서라도 몰아넣자. 짐의 부피보다는 개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신분증이나 산모수첩 같이 자주 꺼내야 할 것들은 작은 가방에 따로 싸더라도 말이다. 참고로 우리는 여러 가방에 짐을 싸는 실수를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대한 짐을 양손 가득 들고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아내는 안내를 받아 바로 어딘가로 들어갔고 거기서 떨어진 나는 하염없이 소파에 짐꾸러미를 올려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짐을 줄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다. 그다지 넓지도 않은 소파에 짐을 쌓아두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새벽 피곤한 시간대엔 뭐든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동안 간간히 아내의 비명소리 비슷한 게 들리는 것 같았다. 다만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니니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손에서 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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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평소에도 그랬고 입원하던 날까지도 자연 출산을 원했다. 그게 아이에게도 좋고 산모에게도 좋다는 거야 상식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찰 도중에 불행한 소식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 드디어 담당의가 나를 호출했다. 거대한 짐을 그대로 놔두고 병실로 들어갔다. 드디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아내는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기를 몸에 붙이고 평온하게 누워있었다. 비명 소리를 들은 듯한 느낌은 내 착각이었던 걸까?

정체불명의 그 기계에 연결된 선이 산모의 배에 연결된 부분 © Seorenn

아내의 상황은 양수가 터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양수가 맑지도 않고 색도 녹색에 가깝다. 그리고 액체만 있는 게 아니라 이물질이 상당히 보였다. 다음에 이어진 의사의 말에서 내가 걱정했듯이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힘들었나봐요. 뱃속에서 태변을 본 것 같아요"

 

우리 아이가 뱃속에서 응아를 했다구요?

태변흡인증후군(Meconium aspiration syndrome), 혹은 태변흡입증후군이라 부르는 증상이 있습니다. 자궁 속의 태아가 태변을 양수에 배출한 상태에서 이를 폐로 흡입하여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질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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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변? 태변은 출산 후 아이가 바로 누게 되는 첫 변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걸 나오기도 전에 엄마 뱃속에서 싸고 만 것이었다.

의사의 말을 처음 들은 순간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혼란스러웠다. 아니 어쨌든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말인가? 괜찮은 건가? 아니 위험한 건가? 순간적으로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사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태변 자체는 무균이라 걱정할 것은 없는데, 문제는 아이가 이걸 들이마셨을 경우예요. 아이는 자연스럽게 양수를 마시거나 혹은 폐로 흡입했다가 내뱉기도 하는데, 만약 폐로 태변이 들어간 상태에서 출산을 하게 되면 폐에 쌓인 이물질 대문에 아이가 폐렴에 걸리거나 심하면 숨을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뭐지? 많이 위험한건가?

"그래서 아이가 태변을 흡입하기 전에 빨리 출산을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선은 진통이 오는지 잠시 지켜보지요."

잠시? 잠깐은 지켜봐도 되는 것일까? 급박하다면서 이렇게 여유 있어도 되는 걸까? 전문가가 아니라 판단은 무리겠지만 약간 속이 타기도 했다.


아내의 몸에 연결된 기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심전도 측정을 할 때 비슷한 장비를 몸에 다는 것을 본 기억은 있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이 기계는 이런 걸 연결해서 가끔 이상한 소리까지 들려주는 이상한 기계다. 뭘까?

그것뿐만이 아니라 옆에서는 뭔가의 그래프를 계속 프린트하는 장치도 달려 있었다. 아 뭐랄까... 지진파 그리는 그 도구 느낌이 났다.

문제의 그 지진파(?) © Seorenn

당시에는 이게 뭔지 물어볼 정신은 없었던 것 같다. 아내는 종종 쏟아지는 양수를 처리하기 위해 화장실을 가야 했고 그때마다 나는 보조를 해야 하는 것도 있고 뭐 하여간 정신이 없었다.

이때까지도 아내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는 못 했다. 진통은 아직 시작되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수술로 꺼내야 되나?


거의 아침 무렵이 되어갈 때쯤이었다. 간호사가 와서 또 기계를 틀어놓고 뭔가를 측정한다. 그리고 위의 지진파(?) 그래프를 들여다본다. 간호사의 표정이 갑자기 이상하게 변했다. 내심 불안해진다.

"혹시 괜찮으세요?"

연유를 알 수 없어서 황당하기까지도 한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내와 나 둘 다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다시 간호사가 물어왔다.

"지금 진통이 오고 있는 상태인데요?"

어...?

저 산이 진통이라고 한다 © Seorenn

간호사가 그 지진파(?)가 그려진 종이를 보여주며 간단히 설명해줬다. 하단의 선이 진통의 크기인데 이게 너무 높아져서 산이 생긴 부분이 바로 진통이 오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주기도 그렇게 길지도 않다.

아니 잠깐, 그렇다면 지금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되는 건가? 왜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을까? 우리 아내는 희대의 무통증 진통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인 걸까? 뭐가 어쨌든 당황스러운 화제였다.

나도 아내도 간호사도 서로 신기해하고 있는 사이에 의사가 다시 왔다. 드디어 뭔가를 결정해야 할 시간인가 보다.

"이제 진통이 시작된 것 같은데 문제는 이 정도면 최소 12시간은 지나야 출산이 가능할 것 같네요. 그런데 기다리고 있기엔 갑자기 상황이 나빠질 수 있어요. 제왕절개로 최대한 빠르게 아이를 꺼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사실 앞에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마음속으로는 어느 정도 결정해 둔 상태였다. "최대한 빠르게 꺼내자." 이 의견을 이야기하자 아내도 동의한다고 한다. 순식간에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되어 버렸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서 수술 체제로 전환되었다. 제왕절개가 출산 때만 언급되는 이름이라 수술과는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배를 째어 아이를 꺼내는 수술이다. 따라서 모든 수술과 비슷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것은 역시 내키지는 않는 일이다. 보호자 입장에서 동의서에 적혀 있는 온갖 안 좋은 상황 서술들을 보면 누가 수술을 하고 싶어 질까. 하지만 이번은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서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수술보다 마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내는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반신 마취를 해야 하는데 척추에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다.

말은 쉽다. 하지만 생애 처음 척추 마취를 한다면 얼마나 두려울까. 척추 뼈에 주사 바늘을 찌른다는데 겁이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말이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기는 했지만 역시 아이의 엄마는 용감하다. 마취 동의도 서슴지 않고 써 내려간다.

이후 병실을 결정해야 한다. 단순하게 무료로 다인실을 쓸 것인가 아니면 좀 비싸지만 1인실을 쓸 것인가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1인실을 골랐다. 원할 때 언제든지 다인실로 옮길 수 있다고 해서다. 지금에서야 추천하지만, 특별한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면 제왕절개는 무조건 1인실로 고르는 것이 좋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 시국에는 더더욱 1인실이 필수다.

모든 행정 절차를 마치고 아내에게 잘 쉬고 오라고 전했다. 아내는 살짝 미소 지으며 걸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두려움을 감추고서 말이다.


잠을 못 자서 멍한 상태와 긴장된 상태가 겹쳐있는 신기한 상태에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시계라곤 스마트폰의 시계가 전부인데 왠지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간간히 근처 신생아실의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나에게 찾아오는 소식은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제왕절개는 10분이면 끝난다고 했지만 그건 단순히 수술 시간만 이야기한 건가 보다.

깜빡 잊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일을 부모님께 알리지를 못 했다. 내심 냉정하게 전화로 현재 상황을 알리긴 했는데 목소리가 좀 떨리긴 했나 보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자꾸 들린다.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럴수록 긴장은 점점 더해간다. 아내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우리의 아이는 과연 건강할까? 혹시 만약의 사태가 나면 어떻게 하지? 난 무엇을 할 수 있지? 많은 생각이 흘러간다.

잠시 눈을 감고 진정한다. 이 상황에 잠은 올리가 없다. 그저 많은 생각을 천천히 정리하며 스스로 진정을 시도하고 있을 때였다.

"OO님!, OO님!"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가 프롤로그의 마지막을 위한 말이었다.

 

13. 첫 만남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위해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대충 30분이 지났을 무렵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OO님! OO님?!"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다급히 쳐다봤다가 이내 긴장이 가라앉음을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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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절개가 만만해 보이시나요?

어떤 사람이 제왕절개 출산이 자연 출산보다 쉬운 방법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봤습니다. 오랜 시간 진통을 겪어가며 낳는 자연 출산 방법이 확실히 힘들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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