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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13. 첫 만남

by healthyrenn 202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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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위해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대충 30분이 지났을 무렵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OO님! OO님?!"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다급히 쳐다봤다가 이내 긴장이 가라앉음을 느꼈다. 나를 부른 간호사의 손에는 자그마한 천에 덮인 조그마한 인형 같은 것이 버둥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 드디어...

이물질은 원래 다 묻어서 나온다고 한다. © Seorenn

간호사는 별도의 방으로 나를 불러서 아이와 첫 만남을 가지도록 해 주었다. 아이의 몸 여기저기를 보여주며 상태를 설명해 줬는데 사실 상처 따위 아무래도 관계가 없었던 것 같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단지, 이물질을 몸 여기저기에 뒤집어쓰고 온 몸을 동그랗게 말고는 눈을 감고 울고 있는 아이가 보였을 뿐이다.

상처가 조금 있지만 나머진 괜찮다는 말에 긴장의 절반이 순식간에 풀렸다. 아이에게 덕담 한마디 해달라는 간호사의 말에 덕담은 커녕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간호사는 내가 많이 긴장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바로 이해해준다. 나는 아이에게 "건강해야 해"라는 말을 힘겹게 마쳤다. 그리고 아이는 신생아실로 들어가고 짧은 첫 만남은 여기서 끝이 난다.

자 그럼 긴장의 절반은 풀렸는데 나머지 절반은 왜 남았을까? 바로 아내가 무사히 나오는 것이 아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이내 풀리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좀 더 흐르긴 했지만 아내는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로 침대에 실린 채 병실로 바로 옮겨졌다.


"아 너무 작아"

수술 후 셋째 날, 드디어 아이를 제대로 직접 본 아내의 입에서 나온 첫 발언이다. 물론 출산 직후 수술실에서 아이를 보여주긴 했다지만 제정신인 상태에서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아내는 이 아이를 보기 위해 그동안 수 많은 고통을 감내했다. 처음 해보는 수술이었다. 처음 해보는 두려운 척추 마취였다. 수면 마취를 했음에도 일부러 잠을 못 자게 했다. 잠을 잘 수 있게 되어도 베개 조차 못 베고 자게 했었다. 몸에 연결된 여러 주사 관들 때문에 몸을 뒤척이지도 못 하고 정자세로 잠들었다. 통증을 이겨내며 복대를 찼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서 면회실을 갈 때도 힘들고 오래 걸렸다. 그리고 모든 수치심을 버리고 모든 행동, 특히 화장실에서의 일처리를 남편에게 맞길 수밖에 없었다.

이 많은 고통도 아이를 보는 순간 녹아내렸다. 아이가 우연히 미소라도 지으면 그날은 아프면서도 싱글벙글이었다. 이것이 부모라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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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왕절개가 아이를 손쉽게 낳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면 한대 치고 싶어 질 정도로 아내의 회복은 길고 힘들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의 몸은 점점 좋아져 갔다. 퇴원이 가까워질수록 아이 면회를 가는 것이 하루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이 긴 기간 동안 모자동실을 전혀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빌어먹을 코로나 19.

출산한 이후에 아이를 한 번도 직접 안아보지 못했지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소아과에 가서 아이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부모가 직접 데리고 다녀와야 한다고 한다.

처음 받아 든 우리의 아이는 겉싸개에 포근하게 쌓여 있었다. 겉싸개를 살짝 안으니 따뜻하고 꼬물꼬물 거림이 느껴진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부분을 살짝 벌려보니 이제는 눈도 약간씩 뜨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아이는 너무나도 잘 울었다. 초보 아빠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감격스럽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소아과에서 아이가 눈을 제대로 뜬 것을 처음 봤다. 사실 의사가 억지로 눈을 벌린 것이었지만, 덕분에 눈이 제대로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머릿속 저 깊은 곳에 있던 걱정 하나도 이렇게 사라졌다.

어쨌든 이렇게 감격스러운 첫 모자동실...이 아니라 부자동행을 마쳤다. 순식간이었다.


어느덧 퇴원일이 다가왔다. 우리는 퇴원 전날 마치 호텔방을 나서기 전에 짐을 챙기는 느낌으로 병실을 나갈 준비를 하였다. 이상하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어찌 되었건 병원이라는 장소는 그다지 유쾌한 장소는 아니니 나가는 것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5박 6일이라는 짧은 기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었지만 마지막 날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퇴원 당일, 우리는 병원에서 이뤄지는 온갖 분유 및 유아용품 프로모션의 산을 돌파하였다. 그리고 엄청난 비용 결제에 숨을 잠시 멈추고... 결제를 한 뒤 병원 밖으로 나섰다. 이제 우리 아이는 병원을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목적지가 비록 바로 근처의 산후조리원이었지만 말이다.

 

14. 산후조리원 돌입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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