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시도 끝에 임신 8주 차를 막 넘긴 찰나, 우리 부부에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다. 임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련, 바로 입덧이다.
TV에서 보던 그 입덧을 생각해보자. 대화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갑자기 "우욱" 하면서 입을 손으로 막으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뭐...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과는 좀 다른 양상이라 '아 TV 드라마 시나리오는 역시 상상으로 만들어진 편견이 굳어져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와는 좀 다르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입덧의 양상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아내의 입덧은 냄새에 특화되었었다. 그러니까... 냄새가 좀 심하다 싶으면 바로 반응이 왔다. 고깃집 옆을 지나가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났을 때, 시장에 생선 파는 곳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느껴졌을 때, 생선구이 집에서 생선 굽는 냄새를 맡았을 때, 김치 냄새를 맡았을 때, 심할 때는 밥 짓는 냄새에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남편 입장에서는 굉장히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냄새가 나니 먹을 수가 없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떤 냄새를 잘못 맡아서 빈 속에서 억지로 위액을 게워내는 모습도 수도 없이 봐왔다.
입덧이란 게 결코 단순히 구역질만 하는 현상으로 끝나진 않는다. 게워내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럭저럭 견딜만할지도 모르겠다는 아내의 증언이 있었다. 불행히도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멀미를 해봤다면 토하기 전까지 속이 굉장히 불편한데 그런 불편한 증상이 계속 느껴진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나라면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냄새만 잘 피하면 입덧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기름기가 심한 음식을 먹을 때나 혹은 심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음식을 잘 먹다가도 수시로 "우욱" 거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식사 도중 입을 손으로 막으로 수저를 내려놓는 장면을 보는 상황은 항상 안쓰러움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이걸 정면으로 극복한다. 정말 강한 존재다.
이렇게 힘든 입덧으로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 생겨버렸다. 바로 요리다. 요리를 하면 냄새가 나니 필연적으로 집에서 요리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식사를 외식 위주로 해결해 보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자극적인 냄새를 동반했다. 특히 아내가 좋아했던 양꼬치나 곱창, 숯불 고깃집은 최악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결국 요리는 달걀 후라이나 라면 끓이기 밖에 못 하는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애청하던 백종원 유튜브를 통해 머릿속으로만 익힌 요리 능력만 믿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집안일의 분담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요리는 아내, 마무리 및 설거지는 내가 하는 분담이 바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입덧을 보고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라면 미쳐버릴지도 모를 그런 증상을 정신력으로 견디고 있다. 나도 그에 부합할 만큼 도와주지 않으면 내 성에 차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요리까지 떠안다보니 집안일을 대부분 떠안게 된 셈이 되었다. 몸이 좀 힘들긴 했다. 그만큼 임신은 힘든 일이고 나의 각오도 대단했다고 생각은 한다.
그렇다고 각오 하나만으로 뭐든 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할까. 아내가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은 비빔국수나 누룽지를 물에 불린 것, 그리고 식빵에 연한 유자 잼을 바른 것 정도였다. 집 근처에 있던 모 베트남 요리점의 쌀국수는 고기 향이 적어서 그것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힌트는 항상 휘발성이 강했다. 입덧의 양상은 계속 바뀌어갔다. 잘 먹던 쌀국수를 어느 날 먹다가 게워낼 뻔한 적도 있었다. 어떤 중국집에서 짬뽕을 성공했기에 다른 중국집에서도 짬뽕을 시도해보다 실패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내 요리 실력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다만 실력만 늘었지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아내의 입덧 양상은 육류의 기름기도 큰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육류 기름기의 맛이 적게 들게 하는 아내 전용 괴(?) 요리를 만드는 실력만 늘어갔다. 예를 들어 버섯 토마토소스의 (베이컨 없는) 파스타라던가... 다행히도 아내는 된장찌개는 먹을 수 있어서 나도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었다나 뭐라나...
아내의 입덧은 멈출 줄을 몰랐다. 병원에서는 13주 차 정도 되면 차도가 생길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13주 차가 되었을 때 아이는 건강했고 아이 엄마의 입덧은 더 진화하여 괴롭히고 있으니 참으로 다사다난한 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입덧을 진정시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봤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참크래커나 생강차, 냉면이 좋다는 이야기 말이다. 물론 그게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아내에게는 이 모두 통하지 않았다. 다만 냄새가 심하진 않아서 먹을 수는 있었지만 많이 먹기엔 무리였고 입덧을 진정시키지는 못 했다는 이야기다.
먹을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었지만... 그것만 먹다 보면 쉽게 질릴 수밖에 없다.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계속 같은 음식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덧은 이처럼 입덧 자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많은 불편을 초래했다.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입덧의 시련 퀘스트도 결국은 끝이 찾아오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아내는 배가 제법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드디어 난임 병원을 졸업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마 대략 임신 20주 차 근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내의 입덧 또한 조금씩 진정되고 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여기서 입덧이 진정되는 것이 가장 기뻤다. 입덧이 사라지면 적어도 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많이 줄어들 테니 아내와 아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이후 출산까지 함께할 산부인과를 정하고 첫 진료를 받는 시점에서 입덧이 많이 사라졌다. 아이도 건강했다. 만사 오케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약간의 문제도 남아있었다. 아내의 배가 불러오니 아내가 많이 먹질 못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 문제는 조금씩 자주 먹기라는 방식으로 극복은 가능하니 큰 문제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약간 안일한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입덧이 진정되고 둘이서 고깃집에서 숯불양념갈비를 구워 먹다 보니 "이런 날이 결국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신기한 경험 같았다. 입덧 탈출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으니 말이다. 하여간 이제 남은 것은 아이가 뱃속에서 건강하게 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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