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많은 것을 바꿨다. 사람들은 이제 마스크를 옷처럼 입고 다녔다. 물론 한참 된 이야기다.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보건소의 지침이라며 산후조리원은 이제 산모를 제외한 모든 보호자는 나가면 다시는 들어올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아이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음에 나는 아이의 엄마와 함께 2주간을 그대로 숙식하기로 결정한다. 즉 스스로 감옥에 갇힌 셈이 되었다.
아이 엄마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하지만 뭐... 넘어가자.
하여간 그럼에도 잘 지내고 있었다. 이곳 밥은 (그래도 미역국 투성이지만) 아빠 용으로도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모자동실 시간만 기다리면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오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도 어느 평온한 날의 모자동실 시간이 될 거라 예상했다. 불행히도 그날 초보 부부를 크게 당황시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은 시간만큼 먹인 다음 떼었다. 그런데 아이가 젖을 계속 요구했다. 그래서 다시 젖을 물린다. 좀 빠는 듯싶더니 젖꼭지를 뱉어내고 짜증을 내면서 운다.
그렇게 젖을 뱉어낸 아이는 잠시 후 다시 젖을 요구하는 듯이 울음소리를 바꾼다. 그러면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다시 젖을 물린다.
하지만 아이는 잠시 후 짜증을 내며 또 젖꼭지를 뱉어낸다. 그리고 잠시 후 또 젖을 요구한다.
브레이크 없는 무한 루프의 굴레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안아서 달래보기도 하고 젖 물리는 자세를 바꿔보기도 하고 다른 방법으로 시선을 돌리려 해 보고 별의별 짓을 다 해봤지만 아이는 여전히 보채기만 했다. 젖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포기하고 신생아실에 헬프를 요청했다.
아이를 전문가에게 떠넘긴 후 많이 피곤했던 우리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잠시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끊이질 않아서 잠시 후 신생아실로 다시 나가봤다. 거기엔 젖병을 물고 있는 우리의 아이가 있었다.
그렇게 젖을 거부하더니 도대체 뭘까? 그냥 모유가 싫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 사이에 배가 고파진 것일까? 몇 분도 안 되었는데? 근데 뭐 저렇게 열심히 빨고 있을까?
사실 알고보니 아이가 빨던 젖병은 그냥 젖병이 아니었다. 분유는 담기지 않은 빈 병에다 구멍이 막힌 꼭지가 달린 말 그대로 공갈 젖병이었다.
신생아의 빨기 반사는 정말 본능적이다. 입에 들어오면 뭐든지 빨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사가 무작정 본능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아기에겐 빨기 욕구라는 것이 있고 이게 가끔 절실해지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하마터면 젖이 싫어진 걸까 오해할 뻔했다. 그냥 빨기만 하고 싶었던 거구나. 그래서 젖이 나오는 것에 짜증을 냈던 것이었구나.
이렇게 하나하나 우리 아이의 특성을 알아간다. 산후조리원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손쉽게 하나의 선택지를 빠르게 얻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이 일 이후로 우리는 산후조리원에서 조금은 쉬려고 했던 목표에서 벗어나 가급적 많은 것을 알아가려고 목표를 바꿨다. 이대로는 조리원을 나간 뒤 엄청난 고생을 할 것이 뻔할 것 같아서다.
그래서 앞으로의 모자동실 시간은 최대한 길게 가지기로 했다. 전문가가 도와줄 수 있는 곳에서 난관을 미리 체험하여 어떻게 헤쳐나갈지 미리 습득하려는 것이다. 과연 신생아실에선 이것을 좋아할까 싫어할까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우리의 산후조리원 생활은 완전히 망했다. 아이가 오면 2~3시간씩 같이 지내다 밤 12시에 마지막 수유를 하고 보냈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첫 수유를 하고 또 한동안 데리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지니 중간중간 낮잠을 자기도 했다. 뭐 하여간 쉬러 온 사람이 할 짓은 절대로 아닌 것 같았다.
그나저나 한동안 아이의 황달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별 문제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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