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기 시작하면 비밀 작전이 시작된다. TV는 끄거나 볼륨을 줄이고 모든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말소리도 거의 안 들리게 (차라리 수신호가 더 빠를 정도로) 낮춘다. 설거지도 간식 챙기기도 샤워도 멈춘다. 모든 일상생활을 가능한 한 멈춘다.
그리고 아이가 잠들고 30분 후, 멈췄던 모든 일상을 최대한 조용하게 재가동시킨다.
이런 일상이 된 이유야 여럿 있을 거다.
방귀
한 90일 근처였을 거다. 방에 아이가 자고 있는 방에서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내가 방귀를 뀔 때마다 아이가 뒤척였다. 계속 그러니 왠지 미안해졌다. 다행히도 깨우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도 이때부터 예민함이 늘어났던 것 같다.
거짓 울음
100일이 갓 지난 어느 날. 역시 아이는 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이번엔 아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 모든 일상을 거실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뭐지? 잘못 들었나?
이런 아이의 훼이크에 무려 두 번을 속았다. 잘 자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설마 몸이 아프다거나 그런 것은 아닐까?
불행히도 이런 거짓 울음이 계속되면 아이는 곧 잠에서 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안아주기 다시 자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훼이크의 개수는 점점 늘어났다. 이제는 적응이 될 정도로 많이 속인다.
자동 흡입
100일이 지나자 아이는 뭔가를 빨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아이에게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밤에 자던 아이가 갑자기 무언가 빠는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이럴 때 가보면 손가락을 빨거나 자기 입술을 빨면서 자고 있을 때가 있다. 아니 손가락을 빠는 거야 그러려니 해도 자기 입술을 쭙쭙 거리며 빠는 것은 왠지 비정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다행히도 어느 정도 지나니 입술을 빠는 행위는 많이 줄긴 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고 있다.
불행한 점은 아이가 뭐든 빨기 시작하면 잠시 후 높은 확률로 잠에서 깬다.
여전한 시계 모드
아이가 낮에 많이 자면 당연하게도 밤 잠이 걱정된다. 당연히 밤 잠을 좀 설친다.
이럴 때는 자면서 몸도 자주 뒤척인다. 그리고 그러면서 침대 위에서 뒹굴다 혼자 시계처럼 빙빙 돌 때도 있다.
이 덕분에 속싸개 대신 몸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많이 고안해냈다. 굳이 공개할 정도의 노하우는 아니겠지만 집 안의 많은 도구들이 동원되었었다. 그다지 효율적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끝없는 배앓이
105일이 지나도 배앓이는 끝나지 않았다. 100일의 기적을 기다리는 부모들에겐 안타까운 이야기 같다. 다만 양상은 약간 다르긴 하다.
대충 젖 먹다 칭얼거리는 것은 비슷하다. 다만 이제는 배가 아파도 젖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입에 물고 끙끙거리다 울면서 놓치고 다시 문다.
눕혀놓고 배를 좀 만지다 보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이전보다 달라진 점이 더 있다면 배를 만져줘도 그렇게 싫어하진 않는다는 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잘 풀리면 이러다 대변이나 방귀를 거하게 보고 거의 바로 해결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이 배앓이가 겹치면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혹은 자다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면서 깬다. 역시 잠에서 깬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결국은 잠이 문제
우리 아이는 일찍부터 잠자리 교육이 잘 된 것 같다는 섣부른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잠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부모의 자의든 타의든 혹은 아기 본인의 의지이든 아니든 말이다. 원더윅스라고 부르는 그 이상한 공포의 날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이론도 영 거짓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100일의 기적 따위 믿지 말자. 그게 차라리 나중에 속이 더 편할 것 같으니까.
다음 이야기
'육아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 가장 큰 소원은 역시 잠을 제대로 자는 것일 테다 (0) | 2021.03.10 |
---|---|
40. 어느 발사(?)에 대한 기록 (0) | 2021.02.22 |
38. 이것은 아기인가 고양이인가 (0) | 2021.02.06 |
37. 심장의 구멍은 어떻게 되었을까 (0) | 2021.01.25 |
36. 100일의 기록 (0) | 2021.01.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