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했을 때 손가락을 딴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는 행위인 '손 따기'는 아직도 하는 사람이 많은 민간요법입니다. 과연 이런 손 따기는 의학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손가락 따기
손가락 따기는 한의학의 사혈 요법 - 침을 이용한 치료 행위 - 을 민간요법화 시킨 것으로 한국에만 존재하는 요법입니다. 지방이나 집안에 따라 손가락 따는 것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제가 알고 있거나 겪은 손 따기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 배나 등 쪽을 소화가 잘 되도록 아래 방향으로 마사지합니다.
- 팔의 피를 손가락 쪽으로 끌어 모은다는 생각으로 팔을 마사지합니다.
- 모은 피가 빠져나가지 않게 손가락 첫마디 부분을 실로 묶어줍니다.
- 손가락을 굽히고 바늘이나 수지침 등으로 손톱 뿌리와 손 끝 마디 사이의 피부를 피가 나도록 찌릅니다. 경우에 따라 손톱 아래쪽을 찌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 이렇게 해서 나오는 피가 검다면 나쁜 물질이 많이 들어서 급체를 유발하는 피이니 최대한 뺍니다.
- 실을 풀고 다시 배나 등 쪽을 마사지합니다.
-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위와 같은 순서로 다섯 손가락을 다 따고, 그래도 되지 않으면 나머지 손의 손가락을 다 땁니다. 이후에도 차도가 없다면 양 발가락을 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체한 증상이 개선된다면야 나쁠 것은 없겠지요.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개선된다는 의미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급체?
'체하다' 혹은 '급체'라는 증상은 소화가 잘 안 되어서 뱃속이 가득 차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 증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정도에 따라 구토를 유발하거나 설사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급체'는 공식 의학 용어가 아닙니다. 의학적으로는 그냥 '소화불량'이라고 부릅니다. 명확한 병명이 없다는 말은 그만큼 명확한 증상이 있지는 않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손 따기와 소화불량 사이의 상관관계는 무엇이 있을까요? 손을 땄을 때 나오는 검은 피는 정말 독소가 몰려 있는 것일까요?
검은 피
상식 한 가지를 알고 지나갑시다. 피의 색은 붉지만 산소 농도에 따라 피의 색이 짙어집니다. 즉 산소가 풍부한 피는 선홍빛이고 산소가 부족한 피는 검붉은색을 띠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심장에서 뿜어져 나와서 폐에서 산소를 공급받은 동맥의 피는 붉은색을 많이 띠고, 온몸에 산소를 공급하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정맥의 피는 상대적으로 검은색을 띠게 됩니다.
그런데 동맥은 상처가 날 경우 과다출혈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몸 깊숙이 숨겨져 있습니다. 반대로 정맥은 피부와 가까운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손가락을 찔러서 나는 피는 정맥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손가락을 땄을 때 검은색 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거기다 손가락을 묶는 행위로 피가 흐르지 않게 하면 피는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묶이게 되면 혈액 순환이 방해를 받게 되고 손가락 속에 고인 피는 주변 손가락 근육이 계속 소모하게 될 테니깐요.
결국 손가락을 묶은 채로 바늘로 찌르게 되면 무조건 검붉은 색의 피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손가락을 딴다고 해서 독소가 딱히 배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붉은 피가 급체를 유발한다는 설명 자체가 모순이 됩니다.
하지만 효과를 본다는데?
손가락을 따는 행위와 소화불량 사이에는 아직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사람들이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손가락을 따는 행위는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닙니다. 아프고 불편한 행위는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심장 박동이 빨라지게 만들고 입이 마르는 등 사람을 상당히 긴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손가락을 따고 고통에서 해방되면 이내 엄청난 안도감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몸은 교감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킵니다. 사람의 몸이 안정화되는 순간입니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다시 완화되는 느낌을 마치 증상이 개선되는 듯한 느낌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교감신경의 활성화는 소화를 유도하게 된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 이 과정에서 소화불량이 개선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결과적으로 손 따기가 소화불량 해소에 도움이 아예 안 된다는 것은 또 아닙니다.
그밖에 손가락을 따기 전에 배나 등을 마사지하는 것은 소화에 도움을 주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마사지 행위의 결과가 나중에 찾아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론
손을 따면 검은 피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은 피가 급체를 유발한다는 것은 불명 잘못된 지식입니다. 그리고 손 따기 자체가 소화불량을 그다지 해소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하지만 손 따기 이후의 상황을 호전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과, 부교감신경 활성화에 따른 소화 유도는 분명 존재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소화불량이 해소되는 듯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효과를 '가짜약으로도 치료 효과를 낼 수도 있다'라는 의미로 '위약 효과' 혹은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 부릅니다. 참고로 요즘은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부르는 추세라서 그런지 '플러시보'라고 적기도 하나 봅니다. 😱
결론: 손가락을 따는 것 자체가 소화불량을 직접 해소한다는 의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플라시보 효과가 발생할 수는 있다.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는 행위 자체는 몸에 큰 위해를 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늘이 세균에 오염되어 있을 경우 패혈증에 발생할 확률이 있으며 이 경우 굉장히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으므로 가급적 바늘을 알코올로 소독하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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